연중 제16주일 (02/7/21)
(지혜 12,13. 16-19; 로마 8,26-27; 마태 13,24-43)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신학생들은 방학 때마다 교구에서 정해주는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데, 그때 우리 학년이 해야 할 프로그램은 농촌 봉사 활동, 그러니까 농활이었지요. 그래서 충남 전의라는 시골에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전 신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농활 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여름에 할 일이 별로 없지요. 게다가 농촌 일을 처음 해보는 젊은 청년들이 논밭 일을 제대로 하리란 법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장에 가 우사를 개축하거나 버섯 농장에서 나무를 패는 그런 일들을 주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한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한 대여섯 명이 필요하다며 논으로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전 내심 드디어 농촌에 와서 논에 나가보는구나 하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논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먼저 드넓게 펼쳐진 논이 우리들 눈 앞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논둑에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피를 뽑는 것이란다." 전 이 말에 흠찟 놀라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논에서 헌혈을 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누가 갑자기 다쳐서 피가 필요하단 말인가.' 전 그때까지만 해도 피가 잡초를 의미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릴 탐탁치 않게 쳐다보시며 '이 서울 촌놈들' 하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시범을 보면서 그때서야 잡초를 뽑으라는 걸 간신히 알아듣고서 논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또 하나의 난관이 다가왔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속에 어느 게 벼이고 어느 게 피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만 자라온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풀들이 눈 앞에 펼쳐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풀이나 뽑으며 욕도 바가지로 얻어먹으면서 시키는대로 앞으로 쭉 나아갔습니다. 어찌어찌하여 겨우 건너편 논둑에 다다랐을 때 허리를 펴고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까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피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 저 피를 다 뽑으려면 밤을 새도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아무튼 빵 한 조각의 새참에 배를 채우고 마른 논바닥에 허우적대는 올챙이들을 짓밟아가면서 그날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밀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가라지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볏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잡초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가라지를 모두 뽑아버리겠다는 사람들의 뜻을 막으면서 혹시 가라지를 뽑다가 밀도 뽑아버리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방금 이야기해드린 농활에서의 그 사건이 기억납니다. 복음의 상황은 벼와 피를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논으로 뛰어들던 앞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으니 저는 무모하게 아무 풀이나 뽑으며 앞으로 나아갔던 데 반해, 주님은 구분하기 힘든 밀을 살리기 위해 아직 가라지를 뽑지 않으셨던 것이죠. 이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작정 시도했던 제 자신의 성격과 항상 신중에 신중을 더 하시는 주님의 성격 차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네 가지의 복음들이 서로 비슷한 사건과 말씀을 싣고 있으면서도 밀밭의 비유가 유독 마태오 복음에만 있다는 것 또한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마태오만의 관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밀밭의 가라지>란 책의 저자, 토마스 그린은 이러한 관점의 중심에 "식별"이라는 주제를 두고 있습니다. 즉 밀밭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과 가라지를 구별해낼 수 있는 식별 능력이라는 것이죠. 이 식별력을 키울 때까지는 어느 게 밀이고 어느 게 가라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인 측면과 공동체적인 측면, 그런데 우린 공동체적인 측면에 더 민감합니다. 크던 작던 어떤 단체에 속해있다 보면 구성원 간에 작은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모종의 한 구성원을 가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린 당장 낫을 들고 그에게 찾아갑니다. 
"너 참 이상한 사람이로구나. 어서 뽑아버려야겠어." 그리하여 여러 잣대로 그 사람을 평가, 판단하며 덤벼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가라지가 뽑혀집니까? 어찌 하여 그가 뽑혀졌다고 해도 어디서 새로운 가라지가 생겨납니다. 공동체에 깊은 상처가 남지만 상황이 그다지 호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측면을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본인 마음의 텃밭에 있는 가라지는 잘 보고 계십니까? 아마 어느 게 밀이고 어느 게 가라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장점이 단점처럼 보이고 단점이 장점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토마스 그린은 이러한 이유를 '자각성의 결여'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린 거울을 볼 때에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기보다 한 꺼풀 뒤집어쓴 제3자를 바라봅니다. 지기 합리화와 정당화에 능숙한 우리들은,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식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 단점은 장점을 자극하여 보다 에너지를 북돋아주는 활력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가라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단점을 장점화하라고 했나 봅니다. 
개인의 현실이 이러할 진데, 왜 우린 공동체 내에서 눈에 불을 켜고 가라지를 뽑아내려 애쓰는 것일까요? 주님은 그 사람을 기다려주시는데 우린 왜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만 단죄해버리는 것일까요? 마치 선악을 분명히 가릴 줄 아는 재판관처럼 말입니다. 선악의 판단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마지막 날 추수 때에 가려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단죄의 지휘봉을 거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잣대를 반만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굳이 가라지를 뽑으려 하지 않아도 가라지가 이미 모두 밀로 변해버린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그런 하느님 나라를 바라고 계시는지도 모르죠.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을 뽑아 버릴까요?'하고 종들이 다시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 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 들이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